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실험실에서 연구진이 실험을 하고 있다. 생명공학기술(BT)은 앞으로 고령화와 에너지 고갈 등 인류 난제를 해결하고 각종 고부가가치 산업을 창출해 2030년 '바이오 경제시대'를 열 전망이다. 생명연 제공 ■바이오헬스 '글로벌 퀀텀점프기' 열어라 (2) '바이오 경제시대' 대비 서두르는 전세계
"암을 완전히 정복한 나라를 만들겠다."
올해 새해 국정연설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국가적인 암 연구 프로젝트 '캔서 문샷 이니셔티브'를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문샷(Moonshot)'이란 인류가 달에 착륙한 일에 버금가는 혁신적인 도전이란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이 사업은 뇌암으로 장남을 잃은 바이든 부통령이 직접 이끌며 2년간 총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이 프로젝트는 MD앤더슨 암센터 등 미국 내 주요 암 전문병원 9곳이 정부 지원을 받아 대규모 암 환자 유전체를 분석하고, 그 데이터와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맞춤형 항암 치료를 하고, 신약과 백신을 개발해 궁극적으로 암을 정복한다는 구상이다.
인간은 개인별로 모두 다른 유전적 특징을 갖고 있고, 살아가는 환경과 생활 양식에도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같은 치료법이나 약을 써도 환자마다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어떤 환자에겐 효과를 보이는 약이 다른 환자에겐 효과가 없거나 심지어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환자의 유전자 정보와 의료기록, 식이·운동·수면 등 생활 습관을 나타내는 '라이프 로그' 등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에게 맞는 최적의 치료방법을 찾는 기술을 '정밀의료'라고 한다. 기존 '맞춤의료' 개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바이오기술(BT)과 정보통신기술(IT)을 융합해 환자 개인의 유전·환경·생물학적 특성을 정밀하게 진단, 치료하는 개념이다.
전문가들은 정밀의료가 실현되면 질병을 사전에 예측(Predictive), 예방(Preventive)하고 개인 맞춤형(Personalized) 치료를 제공하며, 환자가 직접 치료과정에 참여(Participatory)하는 ƊP 의료'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한다. 이를 통해 정부는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고령화로 갈수록 늘어나는 의료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것으로 기대된다.
◇ '정밀의료' 영역을 선점하라=정밀의료는 산업적으로도 새로운 기회가 될 전망이다. 정밀의료가 실현되면 제약사들은 유전체 정보 등을 활용해 새로운 난치병 치료제 등 신약 개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또 정밀의료에 필요한 인간 유전자 분석 기술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BT, ICT 산업도 함께 성장할 전망이다. 세계 정밀의료 관련 시장 규모는 2025년 147조원에 달할 전망이며, 이를 선점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은 '정밀의료 이니셔티브'를 발표하며 이 분야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폈다. 미 정부는 정밀의료 프로젝트에 올해 2억1500만달러(약 2400억원)를 투자하기로 하고, 국립보건원(NIH) 주도의 '정밀의료계획 추진위원회'를 가동했다. 앞으로 NIH는 100만 명 이상의 환자 데이터를 모아 연구와 임상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한 '정밀의료 코호트'를 구축할 계획이다.
미국에 이어 중국 정부도 올해 3월 '정밀의학 5개년 발전계획'을 발표하고 앞으로 15년 동안 정밀의학에 600억위안(약 10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 계획은 유전체를 분석하고 임상 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수백 개 프로젝트로 구성되며, 프로젝트마다 수천만에서 1억위안에 달하는 연구비를 지원할 전망이다. 중국의학원·칭화대·푸단대는 정밀의학센터를 설립, 관련 데이터를 취합해 유전체를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계획이다. 또 쓰촨대 서중국병원은 자체적으로 미국이 계획하고 있는 정밀의학 구상과 맞먹는 100만명의 유전체 분석을 계획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 Ə대 국가전략 프로젝트' 중 하나로 정밀의료 기술개발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국가전략 프로젝트는 9대 기술 분야에 민간과 정부의 역량을 집중해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키우는 사업이다. 정밀의료 분야에선 국민 10만명의 정밀의료 코호트를 구축하고, 이를 기업체와 병원 등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자원 연계 활용 플랫폼'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병원에서 정밀의료 서비스를 구현하는 차세대 병원정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폐암·위함·대장암 등 한국인 3대 암 환자 1만명의 유전체 정보를 확보해 이를 기반으로 맞춤형 항암진단 및 치료법을 개발한다. ◇ '바이오 경제시대' 준비 분주= 2000년 '인간 게놈 지도'가 공개된 이후로 생명 현상의 원리를 규명하고 활용하는 바이오 기술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요소로 주목받아왔다. 바이오 기술은 인구 고령화와 식량 부족, 환경오염, 에너지 고갈 등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자 경제적으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 2013년 330조원 규모였던 바이오 산업 시장은 2020년 635조원 규모로 두 배 가까이 성장할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전망한 2030년 '바이오 경제시대' 돌입을 대비해 세계 각국은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 첨단 바이오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가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분야로 '뇌 연구' 분야가 대표적이다. 미 정부는 2013년 뇌지도 구축 프로젝트인 '브레인 이니셔티브'를 발표하고 2020년까지 30억달러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으며, 이듬해 유럽은 10년간 10억 유로를 투입해 뇌 신경망 연구와 인공지능 플랫폼을 개발하는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같은 해 일본도 21세기를 '뇌 연구의 세기'로 선언하고 이화학연구소에 뇌과학종합연구소를 설립, 10년간 1000억엔을 투입해 뇌 연구를 수행키로 했다. 우리 정부도 올해 '뇌과학 발전전략'을 발표하며 2023년까지 34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특화 뇌지도 등 핵심 뇌기술을 조기에 확보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세계적으로 줄기세포, 유전자 치료제 등 첨단 바이오 의약품 분야와 사람의 인체 장기와 조직 등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재생의료', 원격의료, 모바일 헬스케어 등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등에 대한 투자와 제도 개선이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 "바이오헬스 '새판' 짜라"= 바이오 기술경쟁력을 높이고 경제 성장으로 연결하기 위한 국가적인 체제 정비도 활발하다. 일본 정부는 자국의 의약품과 의료기기 경쟁력이 점차 낮아지자 지난해 기초부터 실용화까지 일원화된 지원을 하는 국립연구개발기구인 '일본의료연구개발기구(AMED)'를 발족했다. 그동안 부처별로 집행되던 예산 창구를 AMED로 일원화한 일본 정부는 신약·의료기기 개발, 재생의료 실현, 뇌질환 극복 등 9개 중점프로젝트를 추진, 2020년까지 10조엔 규모의 신산업을 창출할 계획이다.
유럽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유럽 2020 전략'과 혁신 연구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2020'을 기반으로 바이오 관련 주요 정책과 과제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독일은 퇴행성 신경질환과 당뇨, 심혈관 질환 등 6대 질병에 연구 역량을 결집하고, '독일 유전자 연구네트워크' '의약학 연구 네트워크' '희귀질환 연구연합' 등 전략적 연구 파트너십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는 구글, IBM, 필립스 등 혁신 기업들과 손잡고 바이오 센서와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인공지능 컴퓨터 등 다양한 기술을 융합한 혁신적인 의료기술을 시험하는 테스트베드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해 바이오 R&D가 전략적인 관점에서 기획, 투자,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종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산하에 범부처 컨트롤타워인 '바이오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바이오특위는 최근 열린 2차 회의에서 '바이오 중기 육성전략'과 '바이오 창조경제 10대 활성화 프로젝트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바이오 중기 육성전략은 올해부터 3년간 추진을 목표로 △R&D 투자확대 △사업 가속화 △규제 완화 △인프라 효율화 등의 방안을 담았다. 정부는 바이오 R&D 예산을 총 R&D 예산증가율 이상 투자하고, 사업화 가속을 위해 창업 초기기업 지원펀드 800억원을 신규 조성할 방침이다.
바이오 창조경제 10대 활성화 프로젝트는 창업부터 투자 회수에 이르는 광범위한 공백분야를 연결해 자생적인 바이오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2018년까지 3년간 총 1300억원을 지원, 바이오 벤처 창업과 기업 성장을 유도하고, 개방형 혁신 체제를 구축하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올해 우선 '의료기관 창업 캠퍼스 연계 신개념 의료기기 개발'과 '모바일 헬스케어 기술 개발 및 지원 플랫폼 구축' 사업을 시작한다.
홍남기 미래부 제1차관은 "바이오는 IT 이후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라며 "바이오 중기 육성전략과 10대 프로젝트가 연구와 산업 현장에서 효력을 발휘해 미래 신시장 창출로 이어지도록 관계부처와 함께 노력해 가겠다"고 말했다.
남도영기자 ■ 경제신문 디지털타임스: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6081802100976788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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